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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소비자 트렌드

어린이 모델 활용의 악습, '아동의 성인화'를 멈춰라

안녕하세요, 미디어플래닝 수업을 수강하는 국사학과 김상아입니다.

이번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현재 우리나라 광고에서 아동모델을 활용하는 양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아동, 어린이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활기참? 천진함? 시끄러움? 귀여움?

다양한 이미지나 단어들이 연상될 텐데요, 우리나라도 오랫동안 어린이의 이런 이미지들을 이용해 어린이 모델을 내세운 광고들이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꼭 주요 타겟층이 아동층이 아닌 경우에도 어린이 모델을 활용한 광고를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의 천진한 시각으로 말하는 것이 더 독특하고 눈에 띄어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미떼(핫초코), 경동나비엔(보일러)은 주요 타겟층이 어린이가 아니거나 어린이에 한정하지 않았음에도 아동 모델을 전면에 내세운 광고를 기획하여 소위 '대박'을 친 사례이죠.

아동 모델을 이용한 핫초코 미떼 광고
브랜드의 주요 타겟층이 아님에도 아동 모델을 사용해 성공한 광고 사례로 꼽히는 경동나비엔

아동 모델을 이용해 '대박'을 낸 위 두 광고는 아동 특유의 순진함과 천진함을 강조한 카피를 이용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물론 아동을 이렇게 귀엽고 천진한 이미지로만 소비할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요:) 그래서인지 요즘엔 전보다 다양한 모습의 아동들이 광고를 비롯한 많은 미디어에서 연출되곤 합니다.

 

그러나 기존의 아동 이미지와 차별화를 시도한 광고들 중 일부는 어린이의 모습에 어른을 투영하는 연출을 한 광고들이 있고, 그 비율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의 다양한 모습을 포착하고자 하는 시도는 좋지만, 아이들을 어른의 시선에서 어른처럼 소비하는 행태가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곤 합니다. 어린이를 어른의 아랫사람이나 소유물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것과, 어른의 시선에서 아동을 '어른의 이미지로 소비'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어린이들을 지나치게 "어른처럼" 표현한 광고들과 그 문제점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 어린 딸이 부모의 아침을 챙겨주는 '평범한 가정' - 이게 정말 "참신함 부족"만의 문제인가요?

2개월 전 기획된 서울우유의 <사랑도 우유도 1등급! 나 100%>편은 맞벌이하는 젊은 부부와 초등학생 딸이 등장하는 에피소드형 광고입니다. 광고에 등장하는 여자아이는 부모보다 일찍 일어나 어른들을 깨우며 이렇게 말합니다. "어서 일어나! 나 학교 가야지!" 그러면서 아이는 혼자 학교를 갈 준비를 척척 마치고 아침을 챙기지 못한 부모에게 서울우유를 '어른스럽게' 챙겨줍니다. 자신들을 챙기는 딸을 기특해하며 부모는 이렇게 말합니다. "딸, 챙겨줘서 고마워~"

 

AP신문에서는 지난 3월 이 광고를 두고 평론한 기사를 냈습니다. 평론가들은 이 광고를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공통적인 반응은 하나로 추릴 수 있었습니다. "어른과 아이를 반전시킨 역전 구도를 통해 참신함을 꾀했지만 역부족이다." 어른스러운 아이가 철없는(출근시간이 다 되어감에도 일어나지 않는) 부모를 챙겨주는 에피소드를 통해 기존에 부모가 아이를 챙겨주던 우유 광고와 차별화를 꾀했지만, 결국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광고였다는 것인데요.

 

여러분들 눈에도 이 광고가 정말 그렇게 '평범'한가요? 광고에 등장하는 우유컵이 자신의 얼굴만할 정도로 "작고 어린 아이"가 양손에 가득 우유를 채워 위태롭게 들며 자신보다 훨씬 큰 어른들을 "어른스럽게" 챙기는 모습이, 제 눈에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어른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어린 아이가 부모를 챙기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귀엽게 그려지는 상황이, 어린이를 '어린이'로서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2016년 린나이의 광고인 <린나이 와이파이 보일러 : 외출알림>편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가족끼리 외출한 상황에서 부모는 천진하게 외출에 신나하는 모습을 보이고, 이에 아들이 "아빠, 보일러가 켜져 있대잖아~" 하면서 철없는 아빠를 나무랍니다. 이 광고에서 외출에 들뜬 사람은 몸이 다 자란 어른이고, 집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카시트를 이용해야할 정도로 작은 어린 아이입니다.

 

위 두 광고의 공통점은 차로 이동할 때 카시트에 앉아야 하고, 우유컵이 자신의 얼굴 크기와 비슷할 정도로 작은 아이들이 다 큰 어른들을 보호하고 돌본다는 것입니다. "천진난만하게" 어른들에게 일침을 가하든, "어른스럽게" 어른을 배려하고 돌보든, 어린이의 이런 모습들을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는 순간! 결국 위 광고들은 성인의 시각에서 보기 좋은 어린이의 모습을 꾸며낸 거나 마찬가지라는 걸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해당 광고의 어린이 모델들은 어른들의 보호가 절실히 필요한 연령의 "아동"들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광고를 보며 인지부조화 내지는 아이러니가 더 크게 일어나는데요. 철없는 어른과 아이답지 않게 성숙한 아동의 모습이 확실히 자연스럽지는 않습니다. 물론 위 광고들은 그런 부자연스러움을 이용해 광고의 차별화를 꾀한 것이겠지요.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성숙한 아이와 철없는 어른의 대비를 통해 "재미"를 보여주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처럼요.

 

하지만 '어른스럽고 기특한 아이'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철없고 유치한 어른'이 등장하는 구도가 보편화되는 것이 정말 괜찮을까요? 어른의 보호를 받아야 할 위치에 있는 아동의 자리를, 되려 자기 자신을 충분히 챙길 수 있는 어른들이 뺏은 건 아닐까요? 또래보다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의 모습을 어른의 시각에서 귀여워하는 현상은, '천진난만하고 순진해서 귀여운 어린이'라는 "진부한"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다른 프레임을 아동들에게 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성인보다 훨씬 크고 많은 위험에 노출되고, 그로부터 보호해야 마땅한 아이들의 약함마저 어른들이 도둑질해 아이들이 있어야 했던 자리를 빼앗아버린 것이지요.

 

이렇게 아이들을 '아이다움'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하고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을 넘어 "평범"하게 여겨지는 사회란, 달리 말하면 아동을 성인과 똑같은 범주에 놓은 채 '어른들이 돌봐주고 보호해야 할 가치가 없는 존재'로 인식하는 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호받을 가치를 잃어 위험에 내몰린 아이들은 어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요? 어린이가 '어른스러운'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과연 어린이들은 누구에게 보호받고 배려받을 수 있을까요?

 

이는 비단 광고계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어린이를 미디어에서 '작은 성인'으로 취급하는 양상은 꽤 오랜 전통(?)이자 관습 아닌 관습(?)이었습니다. 어린이에 대해 잘 몰랐든, 부주의했든, 어떤 이유에서든 지금까지 미디어는 아이들을 성인화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악습"을 서서히 없애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또래보다 조숙하고 생각의 깊이가 성인과 비슷한 아동의 존재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마냥 철없고 귀엽기만 해야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조숙하고 일찍 철이 든 아동조차 "어른의 돌봄이 필요한 미성년자-성년이 아닌 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이 성숙한 아이라도 신체적으로는 미숙하며, 성인 기준으로 맞춰진 사회에서 어른이 보살펴줘야 하고 어른의 배려를 받아야 하는 '어린이'입니다.

 

기존과 다른 어린이들의 새로운 이미지를 통해 참신한 접근으로 신선한 광고를 만드는 것, 좋습니다. 그렇지만 그전에! 어린이를 마냥 귀엽게만 소비하지도 말고! 그러나 '꼬마의 탈을 쓴 어른'이라는 프레임으로 어린이가 어른중심사회에서 보호받을 유일한 장치인 약자성마저 빼앗지도 말고! 어른들이 진짜 "어른"으로서, 아동을 성인의 보살핌이 필요할 뿐인 "동등한 사람"으로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00여 년 전 소파 방정환 선생이 아이들을 독립된 인격체로서 어른들과 동등하게 존중하기 위해 "어린+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처럼요~!

 

오늘의 포스팅을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참고자료

1. 서울우유 - 참신함 노렸지만 역부족이다, http://apnews.kr/View.aspx?No=1544981 

2. [이진송의 아니 근데]어른들이여, ‘어린이’는 건들지 말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104301627015#csidxb3094bea8ed3e38bb8090075bc21d95